가설/개념2020. 3. 19. 15:08

철학의 큰 기둥들이 인식론, 존재론, 형이상학, 윤리학이라면, 이것들의 근본적인 뿌리는, 논리와 직관, 개념과 (선정)체험으로 파고들어가면, 하나로 만날 수 밖에 없다.

즉, 인식의 근원과 존재의 근원은 같다. 인식이 없으면 존재는 무의미하고, 존재가 없으면 인식은 불가능하다. 이는 개념만이 아니라 지금 바로 (인식하고 있는 나의) 존재 자체에 만족하고 집중함으로써 "체험"할 수 있는 것이다. 극단적으로 비유하면, 매트릭스나 통 속의 뇌, VR 등으로도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물 자체" 같은 건 인식할 수 없는 것이며, 무의미하다. 

여기에 더해, 이 형이상적 근원이 형이하의 다양한 현상으로 나타나는 것, 혹은 형이하적으로 "존재"하게 되는 것은, 우연이 아니라 일정한 '법칙'에 의해 즉각적으로 이루어지며, 이 법칙의 바깥은 불가능하다. 생각, 감정, 오감의 각 층위에 따라, 거시와 미시 세계, 의식과 물질 세계의 각 층위에 따라 다른 모습으로 현상되며 항상 변하지만, 그 개별 법칙들을 모두 포괄하는 근원 법칙, 대표적으로 인과율에 따라 모든 현상이 구성된다. 전에도 쓴 적이 있지만, 인과가 적용되지 않는 현상이 있다면, 그것은 곧 전체 체계(system, 어떤 형태든 상관 없이)의 붕괴 혹은 불가능을 의미한다. 원인 없는 현상은 불가능하다.

따라서 인식의 근원 및 존재의 근원은, 곧바로 모든 현상을 구성하는 공통 법칙의 근원이기도 하다. 세상을 알려면, 먼저 나의 뿌리를 알아야 한다. 나의 인식 속에 한 치의 오차도 없이 항상 법칙에 따라 구성되어 나타나는 현상들을 체험하고 분석하다보면 이를 알게 된다.

또한 이 자리는, 인식하는 생물로서, 특히 사회를 이루는 인간으로서 선악을 구분하는 기준의 근원이며, 개념과 체험이 만날 수 있는 윤리학의 유일한 뿌리다. 개별 인간의 존재의 뿌리는 개별적으로 머무르지 않고 인식의 뿌리라 현상 세계의 뿌리이므로, 개별 개체로서의 나와 남을 구분하지 않고 모두를 이롭게 하는 마음의 뿌리가 되기도 한다. 존재 자체에 머무르는 선정 상태에서는 "나와 남이 없는" 상태로 이를 체험할 수 있다. 또한 개념적으로도 선악의 법칙은 근원법칙인 인과율로부터 도출할 수 있다(더 나아가 선악과 인과의 더욱 구체적 표현 법칙까지, 굳이 음양오행이나 육바라밀이나 주역 같은 표현이 아니더라도, 찾을 수 있다). 즉 선악은 인간이 개념으로 만들어낼 수 있는 것이 아니며, 언제나 이 자리에서 기준을 찾아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위선과 독선으로 윤리가 이용당하고 왜곡될 뿐이다. 

* 이건 아직 가설 중의 가설이지만, 빛은 이 자리에서 현상이 나타날 때에 가장 먼저 나타나는, 현상계에서의 절대 척도와 같은 것이 아닐까. 어디서나 속도가 불변하여, 변화하는 시공간의 척도가 되니까, 현상계가 구현될 때 가장 먼저 나타나는 것이 "빛이 있으라"이자, 명상 시에도 멸진정에서 나올 때에 최초로 구현되는 것이 빛임은 당연한 것이다.

 

 

 

Posted by SP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