깨어서 : 敬. 선정바라밀. 나와 남을 가르지 않는 존재 자체의 느낌 자리. 모든 것이 나의 마음 속에서, 혹은 나의 마음을 거쳐 나타나고 있으며, 평생 내가 보고 느끼고 생각하는 모든 것들이 참나임을 체험함. 본래의 내 마음 속에 이미 완전무결한 존재 자체가 있음을 체험함. 내가 나를 보는 상태. 참나. 본성. 열반. 성령. 불성. 신. 하늘. 자연. 무위. 몰입. 정신차림. '마음의 임금 (양심) 앞에 선 경건한 마음'. '항상 깨어있어라'.
즐겁고 : 誠. 정진바라밀. 신바람. 신명. 열정. 자신의 에고 또한 남들과 같이 이롭게 해야 할 중생이며, 즐겁지 않은 억지 선행은 양심에 맞지도 않고 지속되지 않으며 결국 악으로 흐른다. 차가운 에고가 뜨거운 양심으로 항상 불타야 한다. 오버워치의 폭주처럼. 자신이 즐겁지 않은 사람은 결코 남들을 도울 수 없다. 그리고 끝없는 즐거움은 오직 깨어있음에서만 나온다. 밑빠진 독을 항상 채우는 유일한 방법은 나와 남도 없는 넓은 존재 자체의 바다에 빠트리는 것이다.
지혜롭게 : 智. 반야바라밀. 선은 곧 진리를 바로 아는 지혜에서 나온다. 진리에 근거하지 않은 선은 선이 아니라 에고의 아집과 무지이며 역시 악이다. 또한 남들의 입장을 잘 알고 그들의 입장에서 보아야 진짜 선을 행할 수 있다. 남의 입장에서 생각해보지 않고 무작정 나의 선을 들이대는 것 또한 독선이요 아집이며 곧 선의 탈을 쓴 악이다.
남들을 도와라 : 仁義禮. 보시 지계 인욕 바라밀. 사랑 정의 예절(조화). 남들을 돕는 것은 물론 사랑이요, 논어에서 가장 강조된 것은 仁이며 성서에서 가장 강조된 것은 사랑이지만, 그 사랑은 무조건 품어주는 것이 아니고 장기적 관점에서, 지혜롭게, 매섭게 끊어야 할 때는 끊어주고, 표현을 해도 현재 상황에 맞게 다듬어서 해야 한다. 부모의 자식사랑은 무한하고 자기 몸보다 더 아끼지만 부모가 오냐오냐만 하면 아이에게는 결국 손해가 되는 것이며, 눈물을 머금고 야단을 칠 땐 야단을 쳐야 하는 것이다. 그렇다고 상과 벌에 사랑이 빠지면 그것 또한 악이니, 인의예지가 고루 갖춰져야 진정한 사랑이다. 또한 남들을 더 잘 도우려면 스스로의 능력도 자연히 도야하게 된다(氣). 그리고 모두를 이롭게 한다는 인류의 가장 근원적 열망이 아니면 사실 진정한 즐거움(정진)도 몰입(선정)도 없으니, 육바라밀과 인의예지신은 사실 뗄레야 뗄 수 없는 한 덩어리의 마음이다.
즐겁고 : 誠. 정진바라밀. 신바람. 신명. 열정. 자신의 에고 또한 남들과 같이 이롭게 해야 할 중생이며, 즐겁지 않은 억지 선행은 양심에 맞지도 않고 지속되지 않으며 결국 악으로 흐른다. 차가운 에고가 뜨거운 양심으로 항상 불타야 한다. 오버워치의 폭주처럼. 자신이 즐겁지 않은 사람은 결코 남들을 도울 수 없다. 그리고 끝없는 즐거움은 오직 깨어있음에서만 나온다. 밑빠진 독을 항상 채우는 유일한 방법은 나와 남도 없는 넓은 존재 자체의 바다에 빠트리는 것이다.
지혜롭게 : 智. 반야바라밀. 선은 곧 진리를 바로 아는 지혜에서 나온다. 진리에 근거하지 않은 선은 선이 아니라 에고의 아집과 무지이며 역시 악이다. 또한 남들의 입장을 잘 알고 그들의 입장에서 보아야 진짜 선을 행할 수 있다. 남의 입장에서 생각해보지 않고 무작정 나의 선을 들이대는 것 또한 독선이요 아집이며 곧 선의 탈을 쓴 악이다.
남들을 도와라 : 仁義禮. 보시 지계 인욕 바라밀. 사랑 정의 예절(조화). 남들을 돕는 것은 물론 사랑이요, 논어에서 가장 강조된 것은 仁이며 성서에서 가장 강조된 것은 사랑이지만, 그 사랑은 무조건 품어주는 것이 아니고 장기적 관점에서, 지혜롭게, 매섭게 끊어야 할 때는 끊어주고, 표현을 해도 현재 상황에 맞게 다듬어서 해야 한다. 부모의 자식사랑은 무한하고 자기 몸보다 더 아끼지만 부모가 오냐오냐만 하면 아이에게는 결국 손해가 되는 것이며, 눈물을 머금고 야단을 칠 땐 야단을 쳐야 하는 것이다. 그렇다고 상과 벌에 사랑이 빠지면 그것 또한 악이니, 인의예지가 고루 갖춰져야 진정한 사랑이다. 또한 남들을 더 잘 도우려면 스스로의 능력도 자연히 도야하게 된다(氣). 그리고 모두를 이롭게 한다는 인류의 가장 근원적 열망이 아니면 사실 진정한 즐거움(정진)도 몰입(선정)도 없으니, 육바라밀과 인의예지신은 사실 뗄레야 뗄 수 없는 한 덩어리의 마음이다.
사실 인의예지를 하고 하고 하다보면, 마치 숯에 불이 붙을 때까지 불을 지르면 오래 걸리지만 결국 한번 불이 붙으면 계속 붙듯이, 습관이 쌓이고 쌓여 언젠가부터는 깨어있기만 해도 양심이 저절로 타올라 이끌게 되며, 또 사실 그 전에 깨어있고 깨어있고 깨어있다보면, 에고는 참나의 바다 속에 이미 항상 살고 있던 물고기임을 알게 되어 승복하고 모든 힘을 빼고 맡겨 항상 깨어있게 된다. 이 때가 되어야 비로소 주객이 바뀌어 하늘이 나를 끌고다니는, 온전히 하늘의 뜻(양심)에 맡겨 끝없는 편안함 속에 쉬게 되니, 적어도 그의 마음 속에서는, 이미 천국, 극락이 이루어진 것이며 그 사람은 자동적으로 끝없이 이웃들을 구하러 다니게 된다. 이것이 겉으로는 끝없이 덕을 행하면서도 안으로는 영원히 안락하게 쉬는 인간의 길, 無爲다.
이것이 인류의 공통적인 목표이자 숙원사업이다.
이것이 인류의 공통적인 목표이자 숙원사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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